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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29
평생 타인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
내 인생에서 건축가라는 꿈을 가지게 된 시작은 중학교 때 기술과 가정 시간에 제도를 배우면서이다. 내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고 그것을 보람으로 사는 직업. 내 삶의 업으로 삼기로 했다. 이른 시기에 적성을 찾았고 건축가라는 꿈만 쫒아왔다. 처음 시작은 단순히 제도를 하고 모형을 만들어보는 즐거움에서 시작하였기에 내 인생의 발걸음이 지구 반대편을 향할 줄은 당시까진 꿈에도 꾸지 못했다. 8년 전 오직 건축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고향을 떠나 상경하던 날, 그 심장이 뜨거워지던 때가 떠오른다. 눈물겨운 입시를 거쳐 원하던 건축대학에 합격할 때는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였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희열도 잠시 건축학도로서의 학부 시절은 짙은 안개 속을 맴도는 것 같은 시기였다.
우리나라 건축의 현실과 건축교육에 회의감이 들다.
대학에서 지식을 쌓으며 차츰 건축학도 다운 모습을 갖춰나가며 내겐 학부시절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던 괴로움이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를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심미안이 생길수록 내가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한 의구심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우리의 도시는 무엇이고, 우리가 안고 가야할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하던 시기에 내가 마주한 한국 건축은 매우 비관적이였다. 우리의 역사이고, 유산인 이 땅 위에 허리를 끊고 들어온 서구의 손들이 컨셉이니, 00이즘이니 하며 우리의 도시를 담론의 실험의 장인 양 그들의 독단으로 채워나가는 모습이였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건축대학에서 조차 국제 건축계의 건강하지 못한 많은 모습들을 답습하고 있는 현실이였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나름대로 씨름하고 투쟁하는 선배들을 만나며, 아파하면서도 스스로 고민하며 나의 해답을 향한 열망은 더더욱 굳건해져 갔다. 다소 비관적인 감이 있지만 이런 부분들이 내가 이 유학 생활을 포기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정신적 뿌리이다.
유럽 건축 바라보기
우리는 여행을 한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 곳 여행지의 음식과 기후, 문화 등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들의 터전은 도시, 즉 건축이다. 그리고 우리는 많이도 유럽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말한다. 아 역시 아름답구나!
건축이 흘러온 수세기를 조금은 특별한 시각으로 짧게나마 언급해보려 한다. 인류가 동굴에서 나온 이래 건축의 역사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수백년 수천년 지속되온 건축을 바탕으로 그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해나가는 부류와 테두리 밖에서의 새로운 것, 기존의 없었던 것을 환영하며 그것들을 만들어내려는 부류이다. 비단 건축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철학, 예술 등 모든 인간의 역사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여왔다.
전자의 부류는 정치적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20세기 중엽, 처참했던 역사의 상흔에 대한 전인류적 책임을 지고 자취를 감출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이 시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미국 본토에서 똬리를 튼 후자의 부류는 종전 후 거침없이 유럽과 아시아 건축, 즉 전세계 건축을 잠식해 왔다. 이 흐름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유럽 도시들의 대부분은 전자의 사고를 가진 부류에 의해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수천년간 천천히 완성되어온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우리는 아름답다고 하는 오랜 전통의 모습을 간직한 유럽 도시를 여행하고 답사한다. 그러나 정작 돌아가서는 새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이데아를 ‘창의적이다, 참신하다’는 말과 함께 두팔 벌려 환영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행을 하려거든 나라별로! 배움을 위해서는 학교 별로!
이탈리아하면 베네치아, 피렌체 등 아름다운 도시를 금방 떠올린다. 만약 여행책자에 글을 쓴다면 이탈리아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한페이지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본지의 성격상 소제목처럼 건축 유학을 위해서는 학교를 따라 유학국을 택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유럽의 건축대학들은 적어도 몇 십년 내지 몇 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동안, 건축 역사의 굵직한 흔적을 남기거나 변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의 학문적 기반의 장이 되어왔다. 그런 영향으로 각 대학들은 독자적인 건축 교육 시스템을 형성해 왔다. 학교의 커리큘럼과 그 학교가 가지고 있는 건축 성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말이 쉽지 각 학교의 특성을 파악하기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다. 더 깊은 학문적 소양을 갖고자하는 예비유학생들은 미리 미리 정보를 수집하는 수완이 필요하다.
이곳 이탈리아 건축은
이탈리아에서는 건축설계 작업을 intervento[인떼르벤또]라고 부르는데 이는 의사들의 외과 수술의 의미로도 쓰인다. 역사 그 자체인 도시의 한 부분, 그것이 작은 집이든 도시 단위든, 그 역사라는 대상에 마치 수술처럼 개입 작업을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곳에서는 전통적으로 건축가라하면 그가 해온 공부와 그가 해나가는 작업에 대해 그 위중함을 인정해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위대한 건축가에게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주는데 그렇게 인정받기란 굉장히 까다롭고 긴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업적이 인정받기도 한다. 이 위대한 건축가란 세계적 명성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생애에 걸쳐 해온 작업의 가치와 괄목할만한 기여를 한 경우, 시민들로부터 그 노고를 인정받는 것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 조차 사후에 마에스트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도시의 건축과 건축유학의 의미
유럽에서 도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 때를 그리스 로마 시대로 본다. 그래서 이탈리아 건축학과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 그 이후의 고전 건축 이론과 고전 건축물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공부한다. 한국에서 한국 고건축을 동양건축사나 한국건축사 같은 역사 수업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작은 집을 설계하든 큰 규모의 단지를 설계하든 늘 도시를 언급한다. 한국에서 작은 규모의 설계에서는 도시개념 보다 디자인 위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건축을 디자인이라는 미적인 시각 위주로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리하여 건축유학을 디자인 실력을 한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혹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번쯤 거쳐가야 할 관문으로 생각하는 오판은 금물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아시아 건축의 디자인은 서구권 건축을 이미 따라 잡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스타일을 배우는 것이 아닌, 긴 역사를 가지고 그들이 고민하고 연구해온 건축의 원형과 원리들을 공부하고 나서는 우리 나름의 문화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연구하고 또한 제안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에서 파생된 선택일 경우에 건축유학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곳에서 건축설계를 intervento라 부르는 세태는 사람의 생사를 다루는 의사들처럼 그 크나큰 두려움과 중대한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는 경종의 의미로 다가온다.
출처: 2015.03 미즈내일 710호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한창 유럽과 한국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직후 내 삶의 행로에 대한 결심과 결론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
언제나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때면
내 지난 기록들을 되짚어보며 결의를 다져본다.
가끔씩 내게도 자라나는 바오밥 나무들이 내 별을 먹어치우기 전에.
늘 변함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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