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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로부터 불편한 소리를 들을 때

3. Letters/마음의 소리

by Andrea. 2020. 4. 3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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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7

 

예를들어 물리학 강의실에서 교수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소개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자. 학생들 중 하나가 결정적으로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한 반박을 제기한다. 그리고 교수는 그 학생과 건실한 문답을 이어나갔다. 

상황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미처 생각치 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에 대해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수정하고 더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그게 아니면 그 학생이 질문이 결국에는 학생의 실력 부족에 인한 것이여서 교수가 잘 설명해줌으로써 결말지어 졌거나.

서구권에서 공부하다보니 교수와 제자, 어른와 아이 사이의 대화에서 전혀 나이를 신경쓰는 것과 유교식 문화에서 가르치는 것들에 대한 무에서 오는 부러운 대화 상황을 보곤 한다. 예를 들어 나이와 직책을 너무 신경쓰다보니 정작 상대방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비평이나 논리적 반박 등에 소극적인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에 대한 예를 위해, 상대가 공부했던 오랜 세월과 노력에 대한 예를 생각해, 상대가 그동안 이루었던 업에 대한 예를 고려해, 이런 저런 예우를 갖추기 위해....얼마나 아랫사람이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던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아름다운 전통 아래 몇가지 불합리와 진정한 예는 예를 논하지 않는 것이 아닌지 같은 모순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지금껏 공부를 하며 그러한 제약적인 것들을 버리고 스승과 제자가 혹은 형과 아우가 서로가 동등한 관계에서 논쟁을 하고 철저하게 감정과 처우를 제외하고 순수히 논의 대상에만 집중하는 경험을 주었던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외국에 나와 외국인들 대하고 또 한국인을 대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들을 비교 관계에 놓게 되다보니 드는 생각들이였다.

진정 윗사람이라는 것이, 자신의 지난 세월의 수고와 그 시간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을 마치 그 지난 자신의 세월 동안의 수고와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함과
나이와 직책을 떠나 그런 틀을 깨고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 의심되는 부분에 당차게 지적하고 반박하는 젊은이들의 용기에 감사함을 가질 줄 아는 이를 가리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내게 인성적인 것에 대한 얘기이던, 성격에 대한 얘기든, 내 전공내에서의 얘기이건, 사소한 옷차림에 대한 것조차든, 지적하고 반박해주고 의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드는 진정한 어른이 되었는지 아니면, 기분도 좀 상하고 그 상대를 미워하기 까지하는 나이만 먹은 무늬만 어른이 되었는지 생각해본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한 소리는 안하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치중하기 보다, 누군가가 내게 그 어떤 류의 얘기라도 불편한 소리라 여기기 않게 느낄 관계를 가지도록 노력하는 삶에 더 치중해야 할 것 같다.

싫은 소리를 들을 때 오히려 기분이 좋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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