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09
한달이 흘렀네요.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그래도 제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겠죠.
사실 한달 전 쯤, 제가 유학 온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돈을 벌고 있을 때, 공부를 하겠다고 온 저였습니다.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했고 아버지의 생활비 지원에 대한 약속을 받고 노력한 결과로 학비면제 혜택을 받고 천신만고 끝에 제 힘으로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환희가 떠오르네요.
여기 온 이유는 건축에서 제가 배우고 싶은 특정한 분야가 있어서였습니다. 그런데 학교 자체의 커리큘럼 상 내년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점차 화가 나더라구요. 그만큼 한국에서도 행정상의 문제로 인생의 시간을 낭비했건만 그걸로 충분했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그래야한다니..
일주일 동안 모든 공부가 올스탑되고 멍하니 있었죠. 모든 것을 걸고 왔는데 제 문제도 아니고 타의에 의한 문제로 불가능하다니... 유학에 대한 존립 자체의 이유를 잃어버린 저는 정말 정신이 혼미했던것 같았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와 부모님에게 조차 말할 수 없었지요. 여기까지 와서도 남에게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고민을 하는 모습 자체를 보여주기 싫었거든요. 무엇보다고 누구한테 하소연한다고 답이 나오지도 않을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고요. 일주일은 정말 모든 것을 놓았던 시간이였습니다. 인생의 방향타를 놓쳐버린 느낌이 온몸을 둘러싸고 그렇게 넋이 나가 일주일을 보냈지요.
한국을 떠날때 이곳에 와서 내가 배우려했던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결론이 내려졌을 때 곧바로 짐싸고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정말 현실로 다가온것인가...신의 테스트인가...별의 별 생각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런 시간이 지나고 저는 정말 가능성이 없는지 모든 것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높으신 분들께 메일도 써보고 학교 찾아가서 묻고, 찾은 방법은 휴학을 1년 하던가, 퇴학 후 1년 뒤에 다시 준비해서 입학하는 방법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입학이 보장되지도 않을 뿐더러 휴학이란 방법은 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외국인은 체류허가증과 비자 문제로 학교 다닌 근거를 제시할 수가 없어 사실상 불가능했어요.
오직 하나만 바라보고 왔는데 말이죠. 이것저것 온갖 방법을 다 알아본 것 같습니다. 그냥 다녀야하는가...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그런 지옥같은 시간은 1년이나 보내봐서 잘 알고 있었거든요. 차라리 한국가서 일을 했으면 돈이라도 벌지 바로 옆학년에서 그들은 배우는데 저는 할 수 없다니... 절대 이겨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결론은 졸업을 미루게 되었지요. 제가 이 삶을 걸어보겠다는 이 노선에 시간과 돈보다는 그것을 위해 진정성을 생각해보았을 때 무엇을 하고자 했고 추구했고 얻었느냐가 더 큰 가치가 있겠다. 라는 가치판단하에 선택하게 되었죠.
그로인해 5년 뒤 10년 뒤의 제 계획에도 수정이 요하게 되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최소한의 시간을 낭비하며 최소한의 리스크를 가지고 가는 저도 참 당황스러웠죠.
또 하나의 고민 이탈리아 법이 몇년전에 바뀌고 국립대인 밀라노공대는 서둘러 이 정책을 반영하고 저같은 학생들은 큰 등록금을 내야하게 되었죠. 그런데 제 선택의 가장 큰 고민이 끝까지 되었던 것은 이 혜택의 포기였어요. 결국에는 포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런 선택에는 참 많은 고민과 대안들을 생각했습니다. 두서없겠지만 생각을 정리해보며 글을 쓰자면 예전부터 소장하고 있었던 '아이비리그의 한국인들'이라는 다큐멘터리도 참 많은 힘이 되었지요.
미국은 한학기에 당시만 해도 천만원에 가까웠다죠. 이 다큐에는 학비 마련을 위해 기숙사 화장실 청소 알바를 하며 공부를 다니는 유학생도 나왔지요. 그리고 지금 같이 사는 룸메 미르코라는 알바니아 친구는 4년동안 저녁 늦게까지 버거킹에서 알바한 돈으로 유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100%로 혼자 힘으로 먹고 살고 공부합니다. 이들 문화에서는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생활비는 부모님 돈으로 사는 제가 오히려 부끄러웠지요.
깊이 200KM이상의 지하에서 3만기압 이상과 3천도의 고온으로 탄생되는 다이아몬드. 천도가 넘는 고열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유릿잔.
아름다움은 그것을 얻기까지 크나큰 산통이 필요함이.
저는 선택을 했지요. 더이상 고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나이 또한 스스로 해야만 하는 나이라는 생각이들었죠. 무엇보다도 이 정도면 자기의 인생에 대한 어느정도의 태도. 어떤 이데아를 구축하진 못했겠지만 어느정도는 이렇게 살아야 겠다는 제 자신에 대한 약속. 그 태도는 어느정도 견지하고 있었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말씀을 해준 분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그런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저였죠.
죽이되던 밥이되던 나느 결심을 했고 이 나라에 왔다. 그렇다면 태풍이 와서 집이 날아가고 홍수가 나더라도 5년 동안, 딱 5년 동안은 무조건 밀어부쳐봐야 한다. 그래야 알 수 있다. 그때 가서 아니다라는 결론이 들면 그것은 책임을 지겠다. 그러니 앞뒤가리지 말고 딱 5년은 집중한다.
오늘도 알바를 하고 왔습니다. 사람이란게 웃긴게 10시간 공부하게 해주면 3시간도 집중을 못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고 짜투리 시간에 보고 싶었던 책을 꺼내 보면 그 잠깐의 집중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건 마치 군대에서 책이 그렇게 보고 싶어 책을 찢어 속옷에 숨겼다가 초소에서 후레쉬 비추어 가며 읽었던 때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마 남자분들은 등화관제 후 간부실이나 어디 숨어서 연등하던 때를 공감하실 겁니다. 또한 그렇게 얻은 돈으로 책을 사면 안읽고 싶어도 읽게 된다는 참 불편한 진실;;ㅋ
여기서 교회나 한인사회를 나가지 않아 인맥을 알 기회 조차 가지지 못했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 유학생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를 사랑하고 정붙이고 살아가시는 분들을 만나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거든요.
지금은 언어가 부족하여 구할 수 있는 알바자리에 한계가 많습니다. 사실상 몸으로 때우는 것들이죠. 오늘은 이사 포장을 하고 왔지요 ㅋ 운동도 되고 그래서 밥도 더 잘 먹게 되고 공부도 더 집중해서 하게되고 시간 관리도 더 철저하게 되고 사실상 잡생각도 안하게 되고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먼가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과 오히려 절심함이 불러온 악착같은 시간관리와 자기관리. 어떻게 보면 많은 80만원 세대 대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이들의 문화를 배우며 공부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일이 아니라 더 큰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감사함이 더 큽니다.
결국에는 넉넉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미스라는 건축가의 less is more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ㅋㅋ 참 여기서 하는 일은 물론 한국이 아니니 참 특이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보낸 몇년의 시간이 제게 어떤 삶을 보여줄지 더 기대가 됩니다.
이번 년은 아마 제 인생을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3차원 곡선일 것 같습니다. 양극의 극치를 다 맞본것 같습니다.
내 인생을 설계하고 그것에 맞춰 전진해 나가고 있다는 이 느낌. 이 성취감과 이 행복감.
이탈리아라는 나라에서 책생에서 하는 공부가 아닌 진짜 이 나라를 배우고 있다는 생각.
이 기분으로 오늘 내일의 역사를 그려나가 봅니다.
FROM And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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