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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해외파견 교비유학생 선발 지원 후일담

3. Letters/마음의 소리

by Andrea. 2020. 5. 1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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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12

 

프롤로그

햇수로 벌써 3년전이 되었네요. 악착같이 장학금을 알아보며 지원했던 시절이.
저의 이 장학금 혜택도 이제 지원이 종료되었습니다. 이러니 더더욱 유학도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네요.

모교측에서 다음 수혜자들 및 후배들을 위한 소감과 같은 글을 작성하여 제출하라는 연락이왔습니다. 그러다 생각난 김에 혹시라도, 몰라서 아예 지원도 못해보는 분들이 있을까 블로그에 편한 형식으로 바꿔 몇자 적어봅니다.

해외로 석,박사 유학을 하려는 후배(여담으로 후배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쓰는 것을 싫어하는데 대체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님들께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햇수로 이미 3년 전 일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얼추 적어봅니다.

장학금을 지원하며 보낸 고시원 살이

저는 유학 결심 이후에 당시 서울에만 형성되어 있던 이탈리아 어학원을 다니며 이탈리아어를 배워야 했지요.

대학 졸업 직후 서울에 연고가 없었던 섬사람?인 저는 서울 내방역에 자리잡은 고시원에서 총무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아마 그때 고시원 총무는 시체 썪는 냄새를 안다라는 말을 실감했던 시절이였죠. 당시의 서울 고시원 살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고시원 총무로 일하게된 계기는 서울에서 지낼 곳이 필요했던 저에게 숙식을 동시에 해결하며 공부를 할 수 있는 일이 고시원 총무라는 것을 추천해준 군대 고참의 추천 덕분이였습니다. 아무튼 당시 고시원 생활은 정말 별의 별일들이 있었습니다. 즐거웠던 추억도 많았습니다.^^

당시에 고시원 사장님부터 범상치 않으신 분이였는데 젊었을 때 국정원에서 일하시다 정년 퇴직 이후 벌이삼아 고시원을 하시는 것이였습니다. 그런 생활로 인해 매일 같이 술을 드셨는데 저와 교대로 일하던 다른 총무 동생을 매일 같이 불러다가 술을 사주셨습니다. 저는 매일 고사하며 물로 잔을 채웠지요. 어쨌든 그분께 처음으로 사케를 마시는 법을 배웠네요;;

술이 들어가시면 젋었을 때 모험담 얘기를 했는데 '야 우리 나라에서 양복에 베레타를 유일하게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어? 나였어. 차에서 뛰어 내리면서 5번 굴러서 방아쇠를 당기고'

얘기만 고지곧대로 들으면 어디 CIA 브루스 윌리스가 따로 없어보였지요. ^^;; 믿거나 말거나인걸로..
아무튼 고생한다면서 정산 날이면 양념치킨을 사주셨지요.

또 고시원 건물 1층의 쓰레기 받아주시던 경비실 어르신은 교직에 계시다가 교장선생님까지 하시다 은퇴하신 분이였습니다. 밤에 고시원 쓰레기 버리고 올라올 때면 저를 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셨는데 여전히 계신지 모르겠네요.

고시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삶은 정말 대채로웠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분 중 하나는 직업이 검사였는데 외도를 하다 파탄이 나고 아내가 주는 벌을 받기 위해 이 2평 공간으로 오게 되었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밤마다 들어오시면서 야식과 소주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셨는데 매번 제 야식까지 한봉지 더 사서 데스크를 지날 때마다 제게 주고 가셨지요.

그외에도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 주식에 빠져 살던 분들, 매일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라면으로 연명하시던 분들, 고등학생 딸을 맡기면서 학원가는지 도망가는지 봐달라는 학부모님들 부터 고시생들 등등

당시 생각이나 서두가 길었네요. 아무튼 파란만장했던 그 시간들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준비 사항

어쨌든 당시에 그렇게 지내며 제가 했던 것은 밀라노공대 지원과 어학 공부, 장학금 지원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입학서류 준비를 위해 이곳 저곳 서류를 떼러다니고 저녁 근무시간에는 고시원에서 일을 하며 준비를 했지요.

아래에 대표적인 장학재단을 첨부합니다. 유학을 꿈꾸시는 분들 중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타지로 공부하러 떠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니깐요.

당시 대부분의 장학재단들에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영어 점수'였으니 졸업 시기가 다가올 때 토익 점수를 받아 놓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만큼 기회가 많아져요.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 http://www.slsf.or.kr
관정 이종환 장학재단- http://www.ikef.or.kr
롯데재단- http://www.lottefoundation.or.kr
한국고등교육재단- http://www.kfas.or.kr
한국연구재단- http://www.nrf.go.kr
교육과학기술부- http://www.mest.go.kr
풀라이트장학금- http://www.fulbright.or.kr/xe/index

그 중에서 '한양대학교 해외파견 교비유학생' 이라고 부르는 장학금입니다.
모든 과정은 한양대 국제처를 통해 주관됩니다.

국제처 링크: http://www.dic.hanyang.ac.kr/indexB1.html
(당시에 국제협력처라는 부서명도 국제처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더군요)

국제처 홈페이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들은 빨간색으로 따로 표시했습니다.

무엇보다 혜택을 보면 매달 500불에 편도 비행기 값을 주는데 매달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학기별로 지급 되기 때문에 6개월에 약 350 만원 정도를 제공해줍니다. 큰 도움이 되지요.

저는 이 덕에 2년간 밀라노공대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었고, 입학할 때 1년을 유급해야만 했던 결정을 내릴 때도 이 재정적인 부분이 해결이 되어 과감히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매학기 해당 유학 대학교 성적을 한양대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학금이 지불됩니다.

1차 서류 준비는 공지에 따라 잘 준비해서 진행하면 되고,
2차 면접 과정에서의 추억을 더듬으며 남겨보겠습니다.

면접 준비

2차 면접 중 인성면접을 위해 따로 준비한 것은 없고, 유학을 가려는 이유 정도를 다시 되새겨 보았지요.
복장은 아마 그냥 단정한 청바지에 흰 카라티정도만 입어도 무난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를 떠올리자면 사실 저는 학연, 지연 같은 것에 대해 매우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나이와 기타 등을 구태여 알려고 하지않지요. 아마 20대를 지나오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에 대한 태도를 세웠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중에 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건축가로 성장하는 길에서 모교를 통해 어떤 이득을 보는 일은 없으리라 결심을 했었지요. 그래서 장학금 수혜자들 끼리의 비공식 모임과 학교측에서 준비한 해외파견 교비 유학생 출신의 모교 교수님들과의 만찬 자리에도 일부러 가지 않았습니다.

선배들께 조언을 들려준다는 의미의 좋은 자리였는데 어떻게 보면 저의 객기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모든게 혹자에게는 꽉막힌 저의 아집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당시 최종면접에서 면접관들이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큰 돈을 지원해주고 미래에 모교 발전에 도움이 될까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면접관들로부터 이 질문을 받고 저는 순간 좀 불편하더군요.
마음 속에서는 '모교의 발전을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고,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건축에 보탬이 된다면야..' 가 맴돌더군요. 아마 실제로 발언을 했다면 탈락했을까요?

물론 큰 돈을 학교 재단에서 함부로 투자할 수 없겠지만 그 질문은 사기업에서나 나올 듯한 얘기로 들렸습니다. 어쨌던 저는 어버버 거리다가 대답을 결국 못했고, 면접관들을 그냥 쳐다만 보다가 서류를 작성하더니 저를 내보냈습니다.

어쨌든 결국 본인의 삶에서 이 장학금 혜택은 제 삶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말 모교의 재정적인 지원은 정말 정말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 고마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 질문을 지금 다시 받는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는데요. 사실 제 삶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고민 중..이네요.

당시 면접은 4명의 면접관과 2명의 지원자가 들어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들어갔던 다른 남학생은 질문에 대해 다음처럼 대답했습니다.

"본인은 유학을 마치면 모교의 교수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수혜자가 된다면..."

옆에서 이 대답을 들으면서 놀란 저는 미리 준비한 대답인지 아닌지 궁금도 했고, 면접관들이 그 얘기를 한낮 젊은 친구의 혈기로 볼지, 오기로 볼지도 반응도 굼금했었지요.

결국 그 친구가 붙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면접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제 경험담 하나는 그래도 하나의 팁이 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던 저는 수혜를 받게 되었고 부끄럽지만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보며 마치고자 합니다.

후기를 마치며

어떻게 합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 보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후배님들에게 보다 일반적인 조언을 하려고 합니다.

유학의 목표는 직업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있었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학문이겠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교수라는 것이 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학은 어렵게 시간과 돈을 들여 오는 것으로, 그것을 출세의 계기로 삼는 순간 그 유학은 더이상 유학(學)이 아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네요. 실제로 해외 석사 학위는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 사회로 접어들었지요.

오늘의 포스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역시 이 장학금의 존재 여부를 블로그 이웃분으로부터 알게 되었거든요. 그만큼 모르면 놓칠 수 있으니깐 열심히 준비해서 큰 뜻 이루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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