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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 불리우는 사나이- 미켈란젤로 일화 1

3. Letters/마음의 소리

by Andrea. 2020. 5. 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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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4

 

"They call me a genius.But if  you knew how much work went into,it you wouldn't call it genius."
사람들은 저를 천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평소 제가 얼마나 연습하고 훈련하는지 곁에서 지켜본다면 저를 천재라고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 - 미켈란젤로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천재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라면서 로맹 롤랑은 그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이렇게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약간의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나면 일에 파묻혀 잠도 몇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볼로냐에서 율리우스 2세의 동상을 만들 때, 그와 세 사람의 조수를 위하여 마련된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이때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잤기 때문에 한 때 다리가 부어 장화를 칼로 찢어야만 했다. 무리하게 장화를 빼면 다리의 살점까지 함께 묻어나올 지경이었다."

라이벌 브라만테가 만든 함정에 빠져서 원치 않는 벽화를 그려야 했던 천재 

미켈란젤로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교황의 지시를 받아 작업을 했다. 그 중에서도 율리우스2세와의 관계는 미묘했다. 두 사람은 마치 형제처럼 다정했다가 불화가 반복되는 그런 관계였다. 천재에게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질투하는 예술가들의 이간질로 교황과 사이가 틀어져 바티칸 궁을 떠났다가 되돌아오곤 한다. 율리우스 2세는 청동의 주조법을 모른다는 미켈란젤로에게 청동 동상을 주문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처음부터 다시 한다.' 라는 심경으로 청동 주조법을 배워 동상을 제작하다 실패를 하기도 한다. 어느 날, 율리우스 2세는 당시 벽화의 기법을 전혀 모르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둥근 천장에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한다. 아니 명령한다. 미켈란젤로의 평전을 쓴 로맹 롤랑은 이 천재를 질투하던 브라만테가 교황의 총애를 받는 미켈란젤로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교황에게 미켈란젤로를 추천한 것으로 본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고, 이 작업으로 위대한 그의 명예가 실추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더군다나 같은 해에 역시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전의 벽화를 그려서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 주문은 미켈란젤로에게는 일종의 시험이자 시련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를 추천하면서 자신은 빠져 나오려고 했다. 미켈란젤로만큼 외고집이었던 교황은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아, 1508년 5월 10일 이 역사적인 작업은 시작되었다. 연구자들은 이 시기가 천재의 90년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들고 '숭고한 세월'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시절에 미켈란젤로는 이런 편지를 쓴다.

 

"나는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벌써 일 년이나 교황에게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너무나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를 받으리라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이 늦어지는 것은 이 일이 어렵고 내 본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만 자꾸 헛되이 지나갑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그림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그에게 가정적인 문제도 어려웠다. 자꾸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동생들과의 문제에서부터 경제적인 결핍, 건강 문제 등 이 시기에 미켈란젤로는 정말로 죽어버리고 싶은 절망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예술가의 고통은 바로 감상자의 희열이 된다는 진리를 증명이라고 하듯,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는 1512년 11월 1일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사진출처: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338B2434D254F7A41

 

본문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289, 글 원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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